[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김영곤 시인 |
사라지는 것은 모두 바람들 뿐이다 이 도시에 솟아나는 빌딩들
높은음자리표처럼 모두 서 있다
미소 짓는 흰 구름의 전, 후를 먼저 보고 싶은 것일까
태양의 빛들을 몸속에 가득 채워 넣고 세상을 소유할 목적이 아니라면
허공에서 퍼덕이는 욕망은 우리에게 아첨이다
너와 내가 인연으로 만나서 너는 생명의 표현이고
나는 죽음을 독배하는 달콤하고 아삭한 허무의 플랫폼에 서서
빌딩들을 눈짓으로 난도질 해본다
도시에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수수밭에 거친 바람이 지나치며
수수알맹이를 털고 있는 듯 자지러진다
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벌떼처럼 왕왕거리며
저마다 생존의 꿀을 찾으러 위험한 질주의 중앙선을 비켜가는 거다
빠른 장난질을 해대는 것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으로 향하는
젊은 떨꺼둥이들 회전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눈물짓는 벗들과
화려한 열반에 들어갈 듯 술을 퍼마시고 있는 것이다
눈감은 도시에서 햇살들은 이제야 무거운 몸을 털고 살며시 창문을 열고
오래된 어둠을 몰아내야 할 시간을 쳐다보고 있다
사랑한다던 사람들은 떠나고 생의 찢긴 이파리들만 촉촉하게 눈물 흘리며
길가에 쓰러진 나와 첫 상면의 너는 현실이고, 공유하는 열매이자
포기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한 송이의 자연물이다
허공의 창문이라도 열어 너와 나는 노란 연등에 촛불을 켜가며
진실이라는 미소마저 날려 보내야 한다
흔들리는 삶의 모습들
열어야 한다 모든 창문은 열려있어야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거다
햇살은 나무숲에서 꿈틀거리고, 바람은 갈대숲에서 우우거릴 때마다
젊은 방초꽃이 통제와 폐쇄된 부스러기들을 쪼고 있다
일상의 표정들을 내 머리에서 수백 편의 상념으로 되돌리며
지난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먼 바다로 항해하기 전 고달픈 어둠의 피를 말갛게 말리고 있다
※ 김영곤 시인은 1954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991년 한국 자유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2010년 첫 시집 『내게 사랑을 묻다』 를 발간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전국 문예지에 다수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한때 자유문예, 풀잎소리 동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회원, 한국자유시인협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제1회 민족문예와사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