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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김여울 '잡초에 대한 서설'..
문학여행

[수필산책] 김여울 '잡초에 대한 서설'

신영규 기자 shin09ykkk@hanmail.net 입력 2023/01/09 06:58 수정 2023.01.09 07:07
농사를 짓는다는 건 어쩌면 잡초와의 끝없는 싸움인지도 모른다.

[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김여울 작가

농사를 짓는다는 건 어쩌면 잡초와의 끝없는 싸움인지도 모른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초는 대체 무엇 때문에 끊임없이 돋아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잡초가 나지 않는 곳에서 마음 편케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방금 뽑고 나서 돌아보면 언제 그랬느냔 듯 거짓말처럼 돋아나 하늘대는 잡초의 강인한 생명력엔 절로 고개가 숙여질 지경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짓기 위해선 한시도 잡초와의 싸움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부푼 꿈을 안고 귀농 귀촌을 했던 사람들 중에 풀(잡초)이 무서워 환고향을 하고 말았다는 말이 흘러나왔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잡초가 없는 땅 또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잡초가 자라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기 때문이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곳일수록 건강한 땅, 기름진 땅이란 것을 초짜 농부 귀촌 이래 수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한사코 잡초를 뽑아내야만 하는 농심이라니….
얼마 전 일이다. 이웃 고을에 사는 우씨 성을 가진 지인이 지나다 들렀다며 초짜를 불러냈다. 웬일이신고? 인기척에 현관을 나서니 우가 초짜의 텃밭을 둘러 보고 있는 중이었다. 우 왈, 첫 마디가 어째서 텃밭의 잡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말끔하게 뽑아버렸느냐며 내뱉는 투가 왠지 성이 차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씀을? 농부가 텃밭의 잡초를 뽑아 없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오? 대거리를 하는 나를 보고 우가 잇댄다는 말이 고깝기 그지없으렷다. 이제 보니 김 선생이 나보다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것 같구먼. 기가 찼다. 명색이 평생을 글나부랭이란 것을 끄적이며 살아온 초짜에게, 그것도 왕년에 중앙지 지방지의 신춘문예에 세 번이나 당선을 해서 시인 작가가 된 지 4십여 성상이 넘은 사람에게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것 같다니. 그것도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그야말로 감성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꼴에…. 이게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말본새란 말인가. 그렇다고 이런 일로 네가 잘 났네 내가 잘났네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몽댕이 침을 꿀꺽 집어삼키고 있는데 이내 또 건네는 말이 가관이었다. 근래 서점에 들렀다 모 수필가가 쓴 책을 사서 읽었는데 거기에 텃밭의 잡초도 넓은 의미로는 화초라며 그냥 보아 넘겨야 한다나 어쩐 다나 한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더란 내용이었다. 대저 그 말이 지당하고도 또 지당하더란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면서 덧대는 말이 자기도 수필 속의 내용처럼 앞으로는 텃밭에 난 잡초를 뽑아내지 않고 무심히 보아 넘기기로 했노라 했다. 그럼 농작물이나 화초의 장래는 어쩌려고?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고 넘겼다. 초짜가 알기로 우는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지 이럭저럭 7십 객이 된 베테랑급 농부였다. 이런 우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잡초 옹호론을 들고 나설 줄이야. 책 속의 수필 내용이 우에게 그렇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을 줄이야.
우와 헤어지고 난 다음 왠지 기분이 몹시 찜찜하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꼭 넋을 놓고 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대저 제까짓 위인이 뭔데 한창 산촌 생활에 자족해하고 사는 초짜에게 감성 운운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초짜는 우가 한 말을 털어버리려 짐짓 머리를 절래절래 내저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초짜에게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한 말을 들은 게 자꾸만 귓전을 맴돌았다. 대체 텃밭의 잡초를 말끔히 뽑아 없애는 행위가 감성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초짜의 텃밭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곳엔 온갖 꽃나무들과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그것들을 더욱 알차고 기름지게 가꾸고 기르기 위해선 버릇없이 불거져 나와 나풀대는 잡초 따윈 눈에 띄는 족족 뽑아내거나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농심의 기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예요? 생각은 무슨? 아까 우씨가 다녀가고 난 뒤부터 뭔가 캥겨 하는 듯한 표정이던데요 뭐.
저녁 식탁을 꾸미다 말고 아내가 생각났다는 듯이 초짜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아, 그냥 좀…. 실은 아까 낮에 우 그 친구가 나더러 자기보다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지 않겠어. 네? 별소릴 다 듣겠네요. 당신은 감성이 너무 풍부해서 탈이란 걸 우 씨가 미처 몰랐군요. 그렇지? 내가 누구보다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 맞지? 그러니까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신춘문예에 세 번씩이나 당선을 해서 작가 시인이 된 거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우 씨가 그런 소릴 했을까요. 아내의 물음에 초짜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듣고 보니 우씨 그 양반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네요. 겨우 남의 책 내용 몇 구절을 읽고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잡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잡초가 더부룩한 텃밭을 그냥 보아 넘기고 산다면 그거야말로 감성이 태부족하거나 반이성적인 사람 아니겠어요. 맞아, 맞아. 농부가 자기 집 텃밭에 난 잡초를 그냥 보아 넘긴다면 그게 어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야. 암, 아니고말고. 당신 말대로 감성이 태부족이다 못해 반이성적인 사람임에 틀림이 없지. 그에 비하면 난 역시 어쩔 수 없는 농부의 기질을 타고 난 사람 같아. 잡초라면 눈에 띄기 무섭게 뽑아 없애는 성미거든. 그 덕분에 우리 집 텃밭엔 항상 아름다운 꽃들과 푸성귀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어우러져 있으니 말야.



※김여울 작가는 전남일보(현 광주일보)신춘문예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에 당선됐다. 전북아동문학상, 장수군민의장문화장, 현대아동문학상, 전북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회(90,05)문예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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