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타민=신영규기자]
▲김영곤 시인 |
네온 불빛 사이로 저무는 옛 추억들은
먼 길 가는 밤 앞에서 은유의 옷을 입은 채
나를 돌아보지 않고 검은 고양이처럼 지나간다
아파트 전등들이 하나둘씩 보조개를 짓듯 켜지는데
출근을 서둘러야 할 엄마는
다시 아침을 위하여 거실 나비 되어 날았고
어린아이 칭얼대는 소리 유리문 물빛그림자로 비친다
가지 끝에서 쉬어가는 12월 늦은 꿈이 목놓아 운다
승강장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중년의 뿜어내는 혈기가
지정된 시간표에 젖을 물린다
세월이 또 한 번 지나가는 낙엽들 엉거주춤 못다 한
시간들을 갉아먹고 있다
봄은 아직 겨울 혀를 깨물고 멀겋게 개화의 완장을 낀 채
꽃과 나무들 새벽이슬의 뼈를 머금고
무표정의 햇빛 망막에서는 트림 냄새가 난다
지난해의 가랑잎들을 달고 나무는 삭은 거미줄 사이로
찬바람을 빨아들이며,
한겨울에도 푸르른 풀잎 줄기마다 서릿발이 성큼성큼
뒤숭숭하게 핀다
안경을 벗은 나는 이른 풍광들이 서툴고 안 보이겠지만
흩어진 목덜미 뒤로 스치며 지나가는 것들
절벽을 오른 내 꿈이 그렁그렁 뜬눈으로 영글어간다
느티나무는 적막을 더듬다가 추위에 달빛속으로 한 조각
심장만 남겨 두근거리는데
아직 1월의 기미는 눈치채지 못한 인적 없는 아침이지만,
겨울바람이 뒷걸음질로 뜰 안 낙엽 더미를 허적거리고 있다
※ 김영곤 시인은 1993년 한국자유시인협회 회원으로,
한국자유시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자유시인협회·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22년 ‘민족문예와 사상’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내게 사랑을 묻다』, 『그대, 사랑의 계좌는 있나요』 가 있다.